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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케어

"내가 뭘 먹었더라..." 치매 어머님이 식사를 잊으실 때 - 12년 며느리의 기록

by 기억창고 2026. 5. 13.

치매 어머님이 식사를 잊으실 때

"어머니, 점심 뭐 드셨어요?"

요즘 저희 집 거실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대화예요.

저녁때쯤 어머님 방에 들어가서, 평소처럼 여쭤봅니다.

"어머님,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

어머님은 한참 천장을 보시다가, 손가락을 입가에 대시고 진지하게 고민하세요.

"내가... 뭘 먹었더라... 먹은 것 같은데..."

 

가끔은 "아니, 아무것도 안 먹었어. 하루 종일 굶었어"라고 하실 때도 있어요. 분명히 점심에 제가 챙겨드린 죽을 반 그릇 드시는 걸 본 게 두세 시간 전인데 말이에요.

처음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어머님이 정말 굶으셨다고 생각하시는구나' 싶어서요. 그러다가도 가끔은 "또 잊으셨네..." 하는 답답함이 올라오기도 했어요.

오늘 이 글을 쓰는 건, 같은 자리에 계신 보호자분들께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예요.


어머님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치매 진단 12년 차의 어머님은 요즘 이런 모습이세요.

집밥을 잘 안 드시려고 해요. 평생 손수 김치 담그시고 된장국 끓이시던 분인데, 이제는 제가 차려드리는 집밥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세요.

밖에 나가시면 새로운 음식만 찾으세요. 가끔 가족이 외식하러 나가면, 어머님은 메뉴판을 한참 보시다가 "이거 한번 먹어보자" 하시면서 전에 안 드시던 음식을 골라 드세요. 신기하게도 그땐 잘 드세요.

낮에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아요. 예전엔 아침에 일어나시면 거실에 나오셔서 텔레비전도 보시고 손주들도 챙기셨는데, 요즘은 점심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셔서 침대에 누워 계시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운동량이 줄어드니 식욕도 줄어요.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짧아지니 배가 잘 안 고프시고, 자연스럽게 식사 양도 줄어들어요.

식사하신 것을 기억 못 하세요. "내가 뭘 먹었더라..." 이 말씀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세요.

배고프면 우유 한 잔으로 해결하려고 하세요. "배고프면 우유 먹으면 되지. 뭐 차리고 그래" 하시는 게 어머님의 요즘 답변이에요.

 

이게 왜 생기는 걸까 - 치매와 식사의 관계

처음엔 저도 '왜 이러시지?' 했어요. 알아보고 정신과 선생님께도 여쭤보면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드릴게요.

1. 단기 기억의 손상

치매가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단기 기억이에요. 오래된 기억(친정엄마, 결혼식, 자식들 어릴 때)은 또렷한데, 1~2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 사라져요.

그래서 점심을 드시고도, 오후가 되면 그 기억이 그대로 사라지는 거예요. 어머님은 거짓말을 하시는 게 아니라, **정말 본인 안에서는 '하루 종일 굶은 게 사실'**인 거예요.

2. 익숙한 환경의 단조로움

평생 사신 집은 어머님께 너무 익숙한 공간이에요. 그래서 자극이 적어요. '새로운 음식이 들어왔다'는 감각이 잘 안 생기시는 거예요.

반면 밖에 나가시면 새로운 풍경, 새로운 냄새,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감각이 깨어나면서 식욕도 함께 살아나는 경우가 많아요. 어머님이 밖에 음식만 찾으시는 게 그냥 변덕이 아니라, 뇌의 자극이 줄어든 결과일 수 있어요.

3. 운동량 감소와 식욕의 연결고리

치매가 진행되면 활동량이 줄어요. 활동량이 줄면 자연히 배가 덜 고프시고, 식욕이 떨어져요. 그러면 또 더 움직이지 않으시고, 또 더 안 드시고...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예요.

4. 미각과 후각의 변화

치매는 미각과 후각에도 영향을 줘요. 평생 좋아하시던 맛이 변하고, 음식 냄새를 잘 못 맡으세요. 그래서 평범한 집밥에는 흥미가 떨어지고, 자극이 강한 새 음식에 끌리시는 경우가 많아요.

이걸 알고 나니, 어머님이 까다로워지신 게 아니라 어머님 뇌가 변하고 계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어요.

 

우리집이 시도해본 5가지 방법

저도 정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12년 동안 어머님을 모시면서 시도해본 것들 중에서 그래도 효과가 좀 있었던 방법을 나눠드릴게요.

1. "드셨어요?"가 아니라 "같이 드실래요?"로 바꿨어요

처음엔 자꾸 "점심 드셨어요?"라고 여쭤봤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그 질문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으시더라고요. "내가 안 먹었나? 아니, 먹은 것 같은데..." 본인도 헷갈리시면서 자존심이 상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바꿨어요.

"어머님, 저 출출한데 같이 사과 한 쪽 드실래요?" "어머님, 죽 한 그릇 했는데 같이 드시면 어때요?"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를 묻지 않고, 그냥 새 식사 자리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드리는 것. 이 변화 하나로 어머님 식사 시간이 많이 늘었어요.

2. 작은 양을 자주 드리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세 끼를 꽉 채워 드시던 시기는 이미 지났어요. 지금은 하루 5~6번에 걸쳐 적은 양을 자주 드리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 아침 7시: 따뜻한 죽 반 그릇 + 두유
  • 오전 10시: 사과 한 쪽 또는 바나나 반 개
  • 점심 12시 30분: 부드러운 밥 + 한두 가지 반찬
  • 오후 3시: 단호박 죽 또는 떡 한 조각
  • 저녁 6시 30분: 가벼운 한 끼
  • 잠자기 전 8시 30분: 따뜻한 우유 한 컵

'한 번에 많이'가 아니라 '조금씩 자주'가 핵심이에요. 그러면 어머님도 부담이 덜하시고, 저도 한 끼를 못 드셨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아요.

3. 일주일에 한 번은 '밖에서 새 음식' 시간을 만들어드려요

어머님이 새 음식에 끌리시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걸 활용하기로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가까운 식당에 어머님 모시고 나가요. 그때는 평소 잘 안 드시던 메뉴를 일부러 권해드려요.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니 식욕도 살아나시고, 외출 그 자체가 운동이 되고, 인지 자극이 돼요.

남편도 함께 가고, 가끔 아이들도 같이 가요. 어머님은 그날을 정말 즐거워하세요. 식당에서 드신 음식은 그날 저녁에도 가끔 기억하시기도 해요.

4. 작은 운동을 식사 시간 전에 끼워 넣었어요

식욕이 없으신 이유 중 큰 부분이 운동량 부족이라는 걸 알고 나서, 식사 30분~1시간 전에 가벼운 활동을 같이 해드려요.

  • 거실에서 같이 천천히 걷기 5분
  • 의자에 앉아서 팔 들기 운동
  • 베란다에 나가서 햇볕 쬐기
  • 손가락 운동 (수건 짜기, 콩 골라내기)

거창한 운동이 아니어도 돼요. 몸이 살짝이라도 움직이면 식욕 신호가 살아나요. 효과가 즉시 나타나진 않지만, 꾸준히 하면 분명 차이가 있어요.

5. "굶었어"라는 말씀에 반박하지 않아요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분명히 점심 드신 걸 봤는데, "오늘 하루 종일 굶었어" 하시면 저는 처음에 "어머님 점심 드셨잖아요!" 하고 반박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어머님 입장에서는 본인 기억이 부정당하는 일이에요. 그러면 더 흥분하시고, 더 식사를 거부하세요.

지금은 이렇게 해요.

"어머, 그러셨어요? 그럼 우리 같이 뭐 좀 먹어요. 죽 끓여드릴게요."

 

기억을 다투지 않고, 새 식사 자리를 만드는 것. 이게 가장 효과적이었어요.

 

✅ 보호자를 위한 식사 케어 체크리스트

내가 지금 어르신 식사 케어를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세요.

  • [ ] 어르신께 "드셨어요?"를 묻기보다, "같이 드실래요?"로 바꾸고 있다
  • [ ] 한 번에 많은 양보다, 조금씩 자주 드리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 [ ] 어르신의 외식·외출 욕구를 거부하지 않고, 인지 자극의 기회로 활용한다
  • [ ] 식사 전 가벼운 활동을 함께 한다
  • [ ] 어르신이 "안 먹었어"라고 하실 때 반박하지 않는다
  • [ ] 어르신의 단기 기억 손실은 병의 증상임을 받아들였다
  • [ ] 식사를 한 번 거르신 날도 자책하지 않는다

세 개 이하라면, 이 글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오늘 적용해보세요. 분명 달라지실 거예요.

 

영양 균형이 너무 깨질 때 - 전문가 도움도 받으세요

위 방법들을 다 시도해보셨는데도 어르신 식사량이 너무 적어 영양 균형이 심각하게 걱정되시는 경우, 꼭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셔야 해요.

  • 어르신 다니시는 신경과·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
  • 동네 의원에서 영양 상태 체크 (체중, 혈액검사)
  • 필요시 영양제·영양식 처방
  • 보건소·치매안심센터 영양 상담 활용

저희 어머님도 한때 체중이 너무 빠지셔서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서 영양 보충 음료를 처방받은 적이 있어요.

우유 대신 그걸 드리면서 영양 균형을 잡았습니다.

식사 케어는 보호자 혼자 짊어질 일이 아니에요. 전문가와 함께 풀어가는 일이에요.

 

같은 자리에 계신 보호자께

오늘도 어머님은 거실에서 누워 계세요. 저는 옆 부엌에서 죽을 끓이고 있어요.

어머님이 갑자기 일어나셔서 부엌을 들여다보시며 그러시네요.

"애미야, 너 뭐 만들어? 나는 하루 종일 굶었어. 배고파."

 

저는 웃으면서 답해요.

"어머님, 그러셨어요? 그럼 우리 같이 죽 한 그릇 해요."

 

어머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탁에 앉으세요. 사실 점심에 같은 죽 반 그릇을 드신 게 두 시간 전이지만요.

어머님은 본인 안에서는 정말 굶으셨고, 저는 그 기억을 다투지 않기로 한 거예요.

같은 자리에서 매일 같은 질문을 받고 계신 보호자분께, 부디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머님이 까다로워지신 게 아니에요. 어머님이 일부러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병이 어머님의 기억과 감각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것뿐이에요.

당신이 차린 그 한 끼는, 어머님이 기억 못 하셔도 분명히 어머님 몸 안에 들어갔어요.

그걸 차린 당신의 마음도 분명 어딘가에 닿았어요.

오늘 한 끼만 잘 챙겨드리시면 돼요. 내일은 내일의 한 끼를 생각하시고요.

그렇게 12년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한 끼씩 함께 가는 거예요.

메모리가드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보호자분들 옆에 있겠습니다. 🌷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어머님이 "오늘 하루 종일 굶었다"고 하시는데, 거짓말은 아니시잖아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치매로 인한 단기 기억 손상 때문이에요.

어르신 입장에서는 정말로 본인이 굶은 게 사실이세요.

이때 "드셨잖아요!"라고 반박하면 어르신은 자존심이 상하시고, 가족과의 신뢰도 깨져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다투지 않고 "그럼 같이 뭐 좀 먹어요" 하면서 새로운 식사 자리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드리는 거예요.

Q2. 집밥은 안 드시고 밖에 음식만 찾으시는데, 매번 외식할 수도 없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치매 어르신이 새로운 음식에 끌리시는 건 뇌의 자극 부족 때문일 수 있어요.

매번 외식이 어렵다면, 집에서도 새로운 자극을 만들어드리는 시도를 해보세요.

평소 안 드시던 음식을 새 그릇에 담아드리거나, 식탁 자리를 가끔 바꾸시거나, 음악을 틀어드리거나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의 외식·외출은 어르신의 식욕뿐 아니라 인지 기능에도 도움이 되니, 가능하면 일정하게 만들어드리는 것을 권해요.

Q3. 식사량이 너무 적으셔서 영양이 걱정돼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체중이 빠르게 빠지거나 식사량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되면, 반드시 의료진 상담을 받으셔야 해요.

동네 의원에서도 영양 상태 체크가 가능하고, 필요한 경우 의사 선생님이 영양 보충 음료나 영양제를 처방해주세요.

우유 한 잔으로만 식사를 대체하시는 경우 단백질·비타민 부족이 올 수 있으니,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보호자 혼자 짊어지지 않으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