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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케어

한여름에 선풍기 난로로 빨래 말리시던 어머님 - 치매 어머님의 집착 증상과 우리집 이야기

by 기억창고 2026. 5. 17.

한여름에 선풍기 난로로 빨래 말리시던 어머님 - 치매 어머님의 집착 증상과 우리집 이야기

 

8월 한낮,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저희 집 앞베란다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에요.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되시던 그해 여름, 8월 한낮에 베란다 문을 열었던 그 순간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해요.

문을 여는 순간,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후끈한 열기가 확 밀려나왔어요. 그리고 그 한가운데 어머님이 서 계셨습니다.

선풍기 난로 두 대가 빨래 건조대를 향해 윙윙 돌아가고 있었어요.

"어머님! 지금 뭐 하세요?!"

저도 모르게 소리가 컸어요. 어머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러시더라고요.

"빨래가 안 말라서 그래. 이렇게 해야 빨리 마르지. 너 옷도 있고, 애들 옷도 있고."

밖은 35도가 넘는 폭염이었어요. 베란다 안은 못해도 45도는 됐을 거예요. 그런데 어머님은 본인이 더운 것도 모르신 채, 빨래 말리는 일에만 온통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그날부터 저희 집의 새로운 숙제가 시작됐어요.


시작은 빨래였습니다

어머님의 치매가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행동 변화는 **'집착'**이었어요.

뭔가 한 가지에 꽂히시면, 그것만 생각하시고 그것만 하셨어요. 그리고 어머님의 첫 집착 대상이 빨래였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빨래를 자주 돌리시는 정도였어요. 같은 옷을 두세 번 빨래하시고, 멀쩡한 옷을 또 빠시고. 그 정도는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점점 양상이 심해졌습니다.

빨래가 빨리 안 마른다고 걱정하셨어요. 분명히 햇볕이 좋은 날인데도, 빨래를 너는 그 순간부터 "안 마른다, 안 말라" 하시며 안절부절못하셨어요.

선풍기를 빨래 앞에 갖다 두기 시작하셨어요. 처음엔 그러려니 했어요. 어머님이 답답하셨겠지, 하면서요.

그러다 어느 날 선풍기 난로까지 켜시기 시작했어요. 한여름에요. 베란다 문을 닫고, 선풍기 난로 두 대를 빨래 앞에 켜놓으셨어요.

가족 모두가 깜짝 놀랐어요. 전기요금 폭탄도 걱정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게 안전 문제였어요.


무엇이 가장 무서웠나

치매 어머님의 빨래 집착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이 세 가지였어요.

1. 화재 위험

밀폐된 베란다에서 가열된 전열기구가 빨래(천)와 가까이 있다는 것. 이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전열기구가 쓰러지거나, 천이 닿으면 바로 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거든요.

2. 어머님 본인의 건강

한여름 베란다 안 온도는 위험할 정도로 높았어요. 어머님은 본인이 더운 것도 못 느끼시고 그 안에 계셨어요. 노인 열사병의 위험이 정말 컸어요.

3. 전기요금 폭탄

선풍기 난로 두 대를 하루 종일 켜놓으시니, 한 달 전기요금이 평소의 세 배가 나왔어요. 이건 그래도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요.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화재 위험이었어요. 어머님이 안 계신 시간에라도 전열기구를 켜두실까 봐, 저는 외출할 때마다 베란다를 몇 번씩 확인했어요.


치매 환자의 '집착 행동', 왜 생기는 걸까

이 시기에 저는 컴포트 정신의학과 선생님께 어머님의 빨래 집착에 대해 여쭤봤어요. 선생님이 이렇게 설명해주셨어요.

1. 치매 환자의 반복·집착 행동은 흔한 증상이에요

치매가 진행되면 한 가지 생각이나 행동에 사로잡히는 증상이 자주 나타나요. 이걸 의학에서는 '고착 행동' 또는 **'강박적 반복 행동'**이라고 해요. 행동심리증상(BPSD)의 한 형태예요.

2. 익숙한 일을 통해 자존감을 지키려고 하시는 거예요

치매가 진행되면서 어머님은 본인이 점점 못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셔요. 그럴 때 평생 잘하시던 일에 집중함으로써 본인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 어머님은 26년 동안 우리집 살림과 손주 셋을 키워주신 분이세요. 그분의 인생 가장 잘하시던 일이 **'살림, 그중에서도 빨래'**였어요.

치매가 진행되니까 다른 건 다 잊어버리시는데, 빨래만큼은 어머님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그 한 가지에 매달리신 거예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머님이 일부러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빨래는 어머님의 마지막 자존심일 수 있어요. 그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위험만 줄이는 방법을 찾으셔야 해요."

이 말씀에 저는 잠시 멍하니 있었어요. 빨래가 어머님의 자존심이었다니.

26년을 옆에서 본 며느리인데도, 저는 그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집이 찾은 해법 - 일체형 세탁건조기

병원에서 돌아와 남편과 한참 이야기했어요. 어머님의 빨래 집착을 없애는 게 아니라, 위험만 줄이는 방법이 뭘까.

며칠 고민 끝에 우리가 결정한 건 세탁기와 건조기가 일체형으로 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었어요.

왜 일체형이었을까

이유 1: 빨래에서 건조까지 한 기계에서 끝나니까 선풍기 난로를 켤 이유가 사라져요.

이유 2: 어머님이 베란다에서 빨래와 씨름하시는 시간이 줄어요.

이유 3: 건조 결과물이 깔끔해서, 어머님도 만족하실 수 있어요.

어머님께 알려드린 방법

처음엔 어머님께 사용법을 차근차근 알려드렸어요. "어머님, 이게 빨래도 되고 자동으로 마르게도 해줘요" 하면서요. 어머님은 신기해하시면서 한두 번 사용해보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작법이 점점 어려워지셨어요. 버튼이 많고 복잡한 화면이 어머님께는 너무 부담스러우셨던 것 같아요. 결국 어머님은 일체형 세탁건조기를 혼자 사용하시지 못하게 되셨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계를 못 쓰시게 되자, 어머님의 빨래에 대한 집착도 함께 줄어들었어요.

처음엔 "내가 해야 하는데..." 하시며 답답해하셨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며느리가 빨래를 돌리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어머님은 옆에 앉아 차를 드시는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셨어요.

 

그러는 동안 어머님의 집착 대상도 다른 것으로 옮겨갔어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드릴게요.)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배운 5가지

치매 어머님의 집착 행동 시기를 지나오면서, 제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드릴게요.

1. 집착을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집착은 어르신의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어요. 강제로 끊으려고 하면 어르신은 더 흥분하시고, 가족과의 신뢰도 깨져요.

저희도 처음엔 "어머님 그만하세요! 더워요!" 하고 막아섰는데, 어머님은 그럴 때마다 더 화를 내셨어요. 막는 게 아니라 풀어드리는 방향이 답이에요.

2. 위험한 부분만 분리해서 차단하세요

집착 자체는 인정하되, 위험한 부분(전열기구, 칼, 가스 등)만 따로 차단하시면 돼요. 저희는 베란다 콘센트에 차단기를 따로 설치해서, 어머님이 안 계실 때는 전원이 안 들어가게 했어요.

3. 대체 가능한 도구를 마련해주세요

저희가 일체형 세탁건조기를 산 게 좋은 예예요. 어머님의 욕구는 인정하되, 위험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해드리는 거예요.

4. 가족이 함께 결정하세요

가전제품을 새로 사는 건 가족 모두가 합의해야 할 부분이에요. 저희는 남편과 세 아이까지 다 같이 거실에 모여서 "어머님 안전을 위해 이걸 사자"라고 결정했어요. 모든 가족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5. 시간이 약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치매의 집착 행동은 영원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집착으로 옮겨가거나,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해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그 시기를 함께 지나가시기를 권해요.


✅ 치매 집착 행동 체크리스트

어르신의 집착 행동을 겪고 계신 보호자분들을 위한 체크리스트예요.

  • 어르신의 집착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했다
  • 그 집착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점검했다
  • 집착을 없애려 하기보다, 위험만 차단할 방법을 찾고 있다
  • 어르신의 집착이 평생 잘하시던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해한다
  • 가족 모두가 같은 대처 방식에 합의했다
  • 필요하다면 가전제품·환경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 정신과 선생님과 집착 행동에 대해 상의했다
  • 어르신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3개 이하면, 하나씩 시도해보세요. 분명 달라집니다.


우리 어머님이 빨래에 그토록 매달리셨던 이유

세 아이와 우리집 살림을 도맡아 해주셨던 어머님이세요.

며느리가 직장 다닐 때도, 손주들이 어릴 때도, 우리 가족의 빨래를 어머님이 거의 다 챙기셨어요. 어머님은 빨래를 통해서 **'나는 이 집에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자존감을 지켜오신 거예요.

치매가 깊어지면서 다른 것은 다 잊으셨어도, 빨래만큼은 어머님 안에 남아있었던 거예요. "내가 빨래를 빨리 말려서 며느리 도와줘야지, 손주들 옷 마련해줘야지" 그 마음이 어머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거예요.

지금 어머님은 거실에 앉으셔서 빨래 너는 저를 가끔 보세요. 그러시면서 한 마디 하세요.

"야야, 빨래 잘 마르더라. 햇볕이 좋아서."

햇볕이 좋다는 그 말씀,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다 좋다고 하세요. 저는 그냥 웃으면서 "네 어머님, 햇볕이 정말 좋아요" 해드려요.

빨래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셨지만, 빨래를 사랑하셨던 어머님의 마음은 어머님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는 참 감사해요.


같은 자리에 계신 보호자께

지금 어르신의 집착 행동으로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르신은 일부러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어르신이 까다로워지신 게 아니라, 어르신 안에서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붙잡고 계신 것일 수 있어요. 그 마음이 위험한 행동으로 나타날 때,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위험만 분리하고, 마음은 인정해드리는 것이에요.

저희 집은 일체형 세탁건조기로 풀었지만, 각 집마다 답은 다를 거예요. 어느 집은 가스 차단기로, 어느 집은 잠금장치로, 어느 집은 환경 변경으로 푸시겠죠.

중요한 건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풀어가는 것'**이에요.

오늘 어르신이 또 같은 일에 매달리고 계신다면, 잠시 그 옆에 앉아보세요. 그 행동 안에 어르신의 한평생이 담겨 있을 수 있어요. 그 사실을 알아드리는 것만으로도, 어르신은 충분히 위로받으십니다.

메모리가드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치매 어르신의 집착 행동, 강제로 끊어도 될까요?

가능하면 강제로 끊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집착 행동은 어르신의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강제로 막으면 더 큰 흥분이나 망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대신 위험한 부분만 분리해서 차단하시고(전열기구, 가스, 칼 등), 집착 자체는 안전한 방식으로 풀어드리는 게 더 효과적이에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면 즉시 막으셔야 하지만, 일반적인 집착은 함께 옆에 있어드리며 풀어가는 방향이 좋아요.

Q2. 우리 어머님은 빨래가 아니라 다른 것(요리, 청소, 돈 등)에 집착하세요. 같은 방법이 통할까요?

핵심 원리는 같아요. 어르신이 평생 잘하시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시고, 그 집착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시는 것이 첫 단계예요. 그 다음 위험한 부분만 차단하시고, 안전한 대체 도구나 환경을 마련해주세요. 예를 들어 요리 집착이면 가스를 차단하고 안전한 작은 전기포트를 두시거나, 돈 집착이면 진짜 돈은 보관하고 비슷한 가짜 동전을 드리시는 식이에요. 어떤 집착이든 정신과 선생님과 한 번 상의해보시기를 권해요.

Q3. 집착 행동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다행인 건가요?

대부분 다른 집착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아요.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은 시기에 따라 양상이 바뀌는 특징이 있거든요. 집착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일 수 있어요. 다행스러운 신호는 아니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도 없어요. 새로운 양상의 행동이 나타나면 그때 또 정신과 선생님과 상의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어르신과 함께 흘러가는 거예요.